
2024년 여름, 나는 더위에 지쳐 도심을 탈출했다. 목적지는 고민할 것도 없었다. 기억 속에 조용히 반짝이던 그곳, 담양 죽녹원이었다. 대나무가 만든 초록의 바다는 다시 한 번 여름을 견디게 해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담양에 도착하던 날, 기온은 33도를 넘나들고 있었다. 그러나 죽녹원 입구를 지나자마자 공기의 결이 달라졌다. 무겁던 열기가 누군가의 손길처럼 가볍게 치워졌다. 대나무 사이로 흐르는 바람이 피부를 스치자 체감 온도가 눈에 띄게 낮아졌다. 그 바람엔 어떤 치유의 힘이 실려 있는 것만 같았다.

죽녹원의 산책로는 약 2.2km. 짙은 녹음 속을 걷는 동안, 나는 수없이 멈춰 섰다. 바람이 대나무를 흔드는 소리, 그 속삭임 같은 리듬이 마음을 어루만졌다.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작년의 그 하루가 올해의 나에게도 다시 필요한 시간이었음을 느낀다.

쉼터에 도착하면 나무 벤치에 앉아 눈을 감는다. 근처 족욕장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놀이터 옆에 세워진 귀여운 판다 동상 앞에선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남긴다. 이곳은 철저히 ‘함께’하기 위해 설계된 공간이면서도, 혼자에게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희귀한 장소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숲 속 공기였다. 피톤치드 향이 짙고, 흙냄새와 바람 냄새가 교차하며 느껴졌다. 걷기만 해도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 몸과 마음이 동시에 치유받는 기분이었다. 이토록 조용하고 시원한 곳을 작년에 다녀왔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죽녹원은 계절의 선물을 제일 잘 활용하는 공간 같다. 여름엔 천연 에어컨처럼, 봄엔 연둣빛 물결처럼, 가을엔 은은한 금빛으로 변한다. 하지만 여름이야말로 이곳이 가장 빛나는 시기다. 뜨거움 속에서 차분함을 찾을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경험이다.

2025년 여름, 다시 떠날 곳을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나는 망설임 없이 담양 죽녹원을 추천한다. 작년의 나처럼 지친 당신이라면, 대나무숲이 따뜻하고 시원하게 맞아줄 것이다. 여행은 멀리 가는 것보다, 마음이 쉬는 곳으로 가는 것이니까.

작년에 남긴 사진을 다시 꺼내본다. 초록으로 둘러싸인 내 모습은 참 평화로워 보인다. 그리고 나는 안다. 올해 여름에도, 그 길을 다시 걸을 예정이라는 것을. 담양은 그렇게 한 번 다녀오면, 다시 가고 싶어지는 여행지가 된다.

단 하나의 팁을 남긴다면, 모기기피제는 잊지 말기를. 자연 속의 쉼에는 가끔 작은 불청객도 따라오니까. 그래도 그 불편조차, 대숲의 시원함과 평온함 앞에선 쉽게 사라진다.
작년에 다녀온 그 하루가, 올해 누군가의 가장 좋은 여름이 되기를 바란다. 담양은 지금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